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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런의 매력

willow77 2023. 5. 6. 11:12

Metropolitan Opera Radio, April 2023 —
Host. Debra Lew Harder
 

 
오역, 의역 매우 많음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가 이보 반 호브의 새 프로덕션으로 메트에 돌아옵니다. 토니상을 수상한 그에게는 이 오페라가 메트 데뷔작이지만, 타이틀 롤 피터 마테이는 메트에서 바그너의 울프람과 암포르타스를 불렀고, 이번 시즌 초에 베르디의 로드리고를 불렀습니다. 로시니의 피가로가 되어 무대를 뒤집어 놓으시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빌런으로 돌아옵니다. 피터는 21년 전 메트에서 처음 돈 조반니를 불렀고, 이번 무대는 메트에서 그의 두 번째 돈 조반니입니다. (아님. 2015년에 크비첸 대타로 했었음) 돈 조반니는 모차르트 오페라의 매력 한 가운데에 있는 인물입니다. 유혹자인 동시에 살인자며, 사죄란 모르는 방탕자이기도 하죠. 마테이에게 이 비난받을 만한 캐릭터에 숨겨진 매력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여러 수단(Tools)이 필요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각각 다른 수단이 그 인물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하고, 서재 안에 꽂힌 책처럼 한 인물의 여러 면면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에요. 그러나 새로운 프로덕션에 들어서기 전, 이 서재는 모두 태워 버려야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 연출에 임해야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고, 감독이 원하는 것에 귀 기울일 수 있기 때문이죠. 역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시작해야 합니다. 그 인물이 얼마나 매력적이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오페라가 그를 통해, 또는 그와 함께 가져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가 흥미로운 부분이죠.
 
새로운 작품이 나올 때마다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이번 작품 속 캐릭터가 가진 특징은 무엇인가요?
 
매우 미묘하지만, 하나의 조각 위에 또 하나의 조각을 얹길 반복하며 연출이 원하는 책을 천천히 만들어 나가는 것이죠. 그렇다고 매뉴얼 있는 건 아니에요. (웃음) 연출이 준 모든 사소한 것들. 사소한 게 아니죠. 인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연출이 준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세트를 이해하다 보면 그 환경에 맞춰지게 됩니다. 이 경우에는 매우 현실적이죠. 칼과 총, 의상 등등 정말 많은 것들이 현실적이고 현대적이며 영화의 문법을 갖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은 현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우리가 사는 이 시대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러니까 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이 우리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생각하게 할까요?
 
지금 우리가 고민하는 것들을 생각하게 돼요.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신체적인 학대를 가하는 것이 옳은가? 오늘날 우리는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잘 인지하고 있어요. 세상이 20년 전과는 다르기에 작품도 과거와 다른 지금의 새로운 맥락 위에 놓이는 것이죠.
 
18세기에 쓰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담긴 메시지와 문제들은 여전히 우리 옆에 있다는 게 다소 정신이 번쩍 들게 합니다. 그리고 심지어 이전보다 더 많이 이러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미투 얘기 하고 싶은데 빙빙 돌리는 느낌)
 
지금의 시각으로 작품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낭만주의적인 요소는 거의 사라졌죠. 여기서 돈 조반니는 자기 성질을 주체하지 못하고 날카로우며 원하는 것을 통제하고 싶어 하지만 그러지 못해 화가 나 있습니다. 이 역시 새로운데 과거에도 이는 중요한 요소였지만, 이번 프로덕션에는 권력의 체계가 좀 더 표면적으로 나타납니다. 우리 역시 오늘날, 이 같은 권력 체계에 대한 문제를 자주 마주할 수 있죠.
 
그는 거짓말쟁이에 남자를 죽이고 여자를 유혹하며, 이들을 제거해버리려고 합니다. 끔찍한 사람처럼 보이죠. 앞서 얘기해주신 이 프로덕션 속에서 그는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요?
 
왜???????????? (정말 생각해본 적 없는 듯한 리액션) 그가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할 수 있고, 하고 싶어서…? 그가 트라우마로 인해 이런 행동을 하는 것 같진 않아요. 그냥 즐기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그게 천성인지는 모르겠어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정말 모르겠어요. 그의 부모님과 이야기해본 적이 있거나 그가 이 행동을 하기 전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도 없죠. 다만 이 프로덕션 속에서 총은 정말 평범하게 등장합니다. 그는 항상 총으로 무장하고 있고 이 때문에 모든 상황이 발행하게 됩니다. 당신이 파티에 간다면, 남자들 절반이 총을 차고 있어 내가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총을 가진 사람들은 폭력의 본질입니다. 그가 지배자인 이 환경에서는 모든 게 쉽습니다. 자신의 성에서 그는 역시 자신의 소유인 오케스트라와 함께 파티를 열며, 자기가 가진 권력을 즐깁니다. 손에 있는 깃털을 하나씩 떼다 보면 나중에는 깃털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눈치채지 못하는, 그런 일이 그에게 천천히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하나 하나 벌어지다 어느 날, 사람을 죽이게 된 거죠. 코멘다토레를 꼭 죽일 필요는 없었지만 그렇게 돼 버렸고, 그 이유는 그가 원했기 때문이죠. 그런 짓을 하는 이유라…. 중대한 문제이지만 모차르트와 다 폰테가 그렇게 썼기 때문이겠죠.
 


음악 얘기를 해 볼게요. 돈 조반니는 끔찍한 사람이지만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노래들을 부릅니다. 체를리나와의 듀엣도 그중 하나인데요. ‘Laci darem la mano’로 그를 거부할 수 없게 만드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역시 감독과 지휘자가 원하는 것에 관한 얘긴데, 두 사람은 돈 조반니가 매우 남자 다우면서도 부드러운 사람으로 보여지길 바랍니다. 체를리나가 방금 마제토로부터 받은 학대와 대비되는데 체를리나는 그로 인해 매우 상처받았고 여기 돈 조반니가 있습니다. 가장 온화하고, 가장 상냥하며 자상합니다. 그녀가 상처받았다는 것이 그녀의 마음을 열 열쇠이죠. 어렸을 적 엄마로부터 들었던 ‘너는 특별한 사람이야’라는 말을 기억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죠. 그 말이 사실이라고. 너는 더 대접받을 자격이 있다고. 흑심을 품은 돈 조반니는 그녀에게 친절하게 다가가죠.
 
그 역시 가짜죠.
 
가짜는 아니죠. 돈 조반니는 그 말을 진심으로 하고 있지만, 이유가 있어요. 그가 하는 모든 말은 진심일 거예요. 다만, 뭔가를 원하고 있고 그걸 얻기 위해 하는 말일 뿐이죠.
 
부드러움과 유혹의 비결이 거기 있었군요. 샴페인 아리아는 이와 전혀 다른 스타일인데요. 아리아의 속도와 재치를 어떻게 담아내나요?
 
연습하시게요?
 
좋아요. ㅋㅋㅋ
 
ㅋㅋㅋ 동네를 매일 뛰어다니세요. 그리고 음… 연습해야죠.
 
당신의 툴박스에서 매우 다른 부분인 것 같은데요.
 
노래도 같은 방법으로 이뤄져요. 이 경우는 좀 더 연기적입니다. 물론, 목소리가 따라가고 있지만, 이 역시 연기를 통해 따라가고 있어요. 연기가 몸 안에 자리 잡으면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그러니까 목소리를 먼저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한 장소에서 노래를 부르고 한 장소에서 행동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 함께 어울리고 슬프면 친구를 부를 수도 있죠. 친구는 당신에게 ‘오늘 왜 슬프니?’라는 말을 하게 될 것이고요. 연기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적절한 톤과 음악성을 갖고 있다면 ‘Finch'han dal vino’ 아리아를 샴페인으로 가득 채울 수 있어요. 그러나 기술적으로는 당연히 노래 연습을 해야 합니다. 노래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동네 곳곳을 뛰어다니면서 체력도 키우고…
 
당신처럼 반짝이는 활력과 에너지도 갖고…
 
저도 그러길 바라죠. ㅋㅋㅋㅋ (Hopely?)
 
아니에요. 이미 갖고 있어요. 2막 세레나데 ‘Deh vieni alla finestra’는 정말 서정적입니다. 가수로서 이 아름다운 아리아에서 무엇을 성취하고 싶나요?
 
그녀를 데려오기 위해서이죠. 간단한 거예요. 그녀는 나이 들어보이지도 않고…
 
여시종 얘기하시는 거죠?
 
네 맞습니다. 엘비라의 여시종이죠. 그래서 맨 처음 그는 그녀가 이해할 수 있도록 노래를 불렀어야 했어요. 마치 자장가처럼요.
 
꼬시기도 하면서요.
 
네. 그렇지만 성적인 의미도 담겨 있어요. 자장가와 성적인 의미 두 가지가 담겨 있는 그의 진지함이 섬뜩하죠. 또 그는 자기가 잊고 있던 것을 이 노래를 통해 이야기할 수도 있어요. 노래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정말 많죠.
 
자기의 젊음을 생각하는 걸까요?
 
그렇죠. 또는 그가 더 정직할 수 있었던 것들.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았던 일들.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아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그가 두려워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스스로가 조금 무너지게 된 것이죠. 많은 가능성을 가진 노래예요. 짧은 노래이고 가벼운 노래이기도 하고 낭만적이지만, 저에게는 많은 레이어들과 메시지를 넣을 수 있는 노래예요. 이건 가장 아래에 있는 것이에요. 연출자, 지휘자, 오케스트라가 함께 대사와 노래로 작동하는 것이죠. 앞으로도 제 목소리가 이런 방식으로 드러나길 바랍니다.
 

ⓒMetropolitan Opera Chorus

 
작품 속 강렬했던 노래들을 이야기해봤는데요. 모차르트는 앙상블 작곡 역시 천재적입니다. 1막 끝에서 연주되는 7중주에 관해 이야기해볼까요? 그것을 유지하는 방법. 혹은 이 장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모든 것이 정상에 도달해야 하는 것처럼 들려야 해요. 그리고 이는 그 분위기를 환상적으로 만들어줍니다. 그의 타락을 위해 모든 것들이 이뤄지고 있어요. 악마 같은 그는 그곳에서 분쟁을 일으키고 모든 사람이 그의 주위를 둘러싼 채 음악이 흐릅니다. 이를 총체적으로 완성하는 것은 모차르트의 완벽함이에요. 정말 천재적이죠. 작곡가가 쓴 대로 그저 수행할 뿐입니다.
 
멋지군요. 오페라의 마지막에 돈 조반니는 왜 코멘다토레에게 회개하지 않았을까요?
 
그는 절대 하지 않을 거예요.
 
그가 교만해서 그런 걸까요?
 
아니요… 교만해서….? (2차 버퍼링)어떤 면에서는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음… 교만해서는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본성에 가까운 것 같아요. 교만을 넘어서는. 교만은 그의 본성 중 일부이겠죠. 단순히 그가 유치해서 어린아이처럼 모든 것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에요. 어떻게 보면 죽음까지 유혹하고 싶은 것 같아요. 용기라고도 볼 수 있겠죠.
 


그 무서운 삼중창 끝에 거절한다는 것이 용감해 보이기도 하네요. 모차르트는 마지막 삼중창을 무섭고 강력한 방식으로 썼습니다. 정말 천재적이고 소름이 돋는데 노래할 때 당신은 어때요?
 
저도 마찬가지이죠.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카리스마를 만들어내려면 이를 지원해줄 많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동료들, 오케스트라의 힘이 그것을 지원하지 않는다면 작동하지 않아요. 이를 한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닌거죠. 혼자 방에 들어가 악인인 척한다고 그걸 완수할 수는 없어요. 주변에서 당신의 악함에 반응해야 하고, 이것은 동료들이 완료해야 할 부분입니다. 모차르트 앙상블이 뛰어난 이유예요. 우리는 함께 작업하고, 함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최대한 서로를 돕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잼 인터뷰어와 핵노잼 인터뷰이의 숨막히는 대담. 가뜩이나 노잼인 사람한테 노잼 질문만 하니 그렇지 ㅠ. 다른 오페라도 아니고 정말 알려진 모페라의 기본 중 기본을 물어보는 질문이 대부분이라 너무 아쉬웠다. 총=권력으로 해석한 연출에 대해 가수가 바라보는 관점은 어떤지, 현대 연출 많이 하는 입장으로서 고전 연출에는 없는 새로움은 무엇인지, 돈 조반니의 여러 면면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 혹은 악인임에도 공감가는 지점은 무엇인지 등등 답변 하나에 파고들 수 있는 소스가 무궁무진했는데 질문 숫자 채우는 데 급급한 인터뷰가 돼서 안타깝ㅠ. 특히나 인터뷰어가 권력에 의한 여성 학대 얘기를 정말 정말 하고 싶은 느낌이었는데, 마테이가 안 받을거란 뉘앙스를 온 몸으로 풍긴건지 어쩐건지 꺼내다 말음. 하기사 몇 년 전 사건사고 터진 마당에 메트가 미투니, 권력 관계니 학대니 이야기 하기 민망하긴 하겠지. 자기 얘긴데 ㅋㅋㅋ 대타이긴 했지만 마테이가 바로 직전의 메트 돈 조반니 연출도 뛰어봤으니 연출적인 차이점을 확실히 느낄 것 같은데 그런 질문도 없었음.
 
근데 인터뷰어 탓만 하기도 뭐한 게 마테이가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뭐라고 하는지도 잘 모르겠어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그 나라 문화를 사랑하는 것과 언어 공부는 다른가보다. ㅋㅋㅋㅋㅋㅋ 악센트가 하도 쎄서... 저 위에 번역이 맞는지도 사실 잘 모르겠음. 노래 얘기 할때도 분명히 가수가 목표하는 지점이 뭐냐고 물었는데 계속 돈 조반니 입장에서 설명해서 망했음. 아니 2막 세레나데가 엘비라 시종 꼬실라고 부르는 노래인 거 이 인터뷰 듣는 사람 중에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다시 한번 알아듣게 질문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은 걸 보면 호스트 역시 소통이 잘 안된다고 생각하고 넘겼나 보다. 노래 얘기를 오래 했는데, 사실 돈 조반니에서 아리아 제일 구린게 타이틀 롤임... 오히려 비호감+충동적인 성격을 드러내고 싶어 모차르트가 예쁜 노래 안 줬다는 설도 있고 전공생들도 잘 부를 정도로 난이도가 낮음 ㅠ 돈 조반니는 노래만큼 연기가 돋보여야 하는데 질문이 노래 위주로 이어져서 안타까웠다.
 
오늘 아침에 메트에서 돈 조반니 첫 공연을 라디오로 방송해줬다. 열심히 연습한다던 샴페인 노래 빼고는 나름 잘 불렀는데, 컨디션이 안 좋은건지 샴페인 노래는 살짝 망했음. 발음이 뭉개지고 평소와 달리 반주랑도 딱딱 안 맞아서 긴장하면서 들었다... 그래도 2막 세레나데 좋았고, 합창 좋았다. 체를리나 이중창도 리허설 때보다 더 좋았다. 잉팡이랑 목소리도 어울렸고, 반응을 보니 연기도 잘했나 보더라. 지휘는 콘트랄토 출신의 나탈리 슈투츠만(Nathalie Stutzmann)이 맡았는데 나쁘지 않았다. 워낙 자주 연주돼 뭘해도 특별하게 들리기 쉽지 않은 반주에 나름 개성을 담았는데 빠른 건 너무 빠르고 느린 건 너무 느리다는 인상이 있었지만, 무난한 것보단 훨씬 나았다. 스트리밍해서 그런건지 강약 조절은 명확하게 안 들렸음. 그리고 반주 곳곳에서 테오르보인지 류트인지 모르겠는 현악기 소리가 상당히 크게 났는데 것도 청량하게 들려 좋았다.
 
메트 방송 들을 때마다 느끼지만, 진짜 관객 매너가 개쩐다 ㅋㅋㅋㅋㅋ 우리나라 만큼 되는 듯. 박수 잘 쳐주고 못해도 환호 쩖. 마테이 2막 세레나데에서도 박수 엄청 쳐줬는데 솔직히 그렇게까진 아닌데? 싶을 만큼 과분한 환호를 해주었다. 저러니 메트 가는 사람은 계속 가는구나 싶었음. 박제되는 5월 20일 공연은 더 잘해주셨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