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서 하는 블로그

피터 마테이는 이번 봄, 메트에서 돈 조반니를 부르기로 했었다. 본문

팬질/인텁·기사

피터 마테이는 이번 봄, 메트에서 돈 조반니를 부르기로 했었다.

willow77 2021. 7. 4. 16:57


UK MAGAZINE OPERA, April 2021 —
By. REBECCA PALLER

발번역 주의

약 1년 전인 2020년 1월 2일, 피터 마테이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보체크> 공연에서 강렬하고 웅장하게 노래를 불렀다. 그날 밤, 거기 있었던 나는 그가 말 그대로 ‘시체처럼 창백한’ 모습으로 땀 흘린 채 의자를 옮기며 윌리엄 켄드리지의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프로덕션 속 세트를 오갔던 것을 기억한다. 아무도 그가 심각하게 몸이 안 좋았다는 것을 몰랐다. 9개월 후 스톡홀롬에 있는 그의 집에서 했던 전화 인터뷰에서 마테이는 그날의 경험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동안 겪었던 것 중 가장 이상한 독감이었어요. 아마도 코로나 초창기 사례가 아닐까 싶어요. 전날 밤 땀이 흐르며 고열이 났고 그날의 유일한 기억은 내가 계단을 오르내리고 달리는 동안 그렇게 지친 적이 없다는 것이에요. 나는 꽤 좋은 체력을 갖고 있고 <돈 조반니>를 할 때 쉴새 없이 돌아다니며 노래하는 것에 익숙했기 때문이죠. 캐릭터로서의 보체크는 좋은 자리는 아니예요. 덕분에 느끼는 모든 것들을 역할에 맡길 수 있죠. 다행히 오페라가 짧아요. 3시간짜리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한 주가 지나자 미스터리했던 병은 사라졌고 그는 전염병으로 메트가 폐막되기 7주 전이었던 1월 22일, 7번째 공연을 마지막으로 <보체크>를 마쳤다. 이후 마테이는 4월 25일, 폴로 셔츠와 검은색 청바지를 입고 <Met’s At-Home Gala>에 등장했다. 라스 데이비드 닐슨의 아코디언 반주로 <돈 조반니>의 아리아 ‘Deh, vieni alla finestra’를 부드럽게 불렀다.

마테이는 막강한 권력자와 외도하는 연인에 의해 미쳐버리고 살인까지 저지르는 군인 보체크를 연기했다. 무대를 본 적도, 음악을 들어본 적도 없었기에 선입견 없이 역할을 맡을 수 있었다. 보체크 역할을 익힐 때, 그는 늘 그랬던 것처럼 집에서 혼자 ‘매일 조금씩’ 악보를 훑어보고 피아노를 연주했다. 처음 느리게 연주한 다음 가사를 더했다. “단어 하나하나의 느낌을 더해가다 보면 어느새 각각의 단어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됩니다.” 단어는 그에게 가장 중요하다. 10년 전, 메트, 라 스칼라, 파리 오페라 국립 극장에서 Patrice Chéreau의 연출의 <죽음의 집>에서 살인범 시시코프를 뛰어나게 연기할 수 있었던 것도 ‘기다림’이란 의미를 가진 체코어 ‘počkejte’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마테이는 1965년 스웨덴 북부 해안 마을 피테오(Piteå)에서 태어나 훨씬 더 북쪽 도시인 룰레오(Luleå)에서 자랐다. 룰레오는 그의 우상인 잉바르 빅셀(Ingvar Wixell)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마테이는 학교에 다닐 때 그를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술집 화장실에서 만나 짧은 대화밖에 나누지 못했어요.”

오페라는 아니었지만, 피터와 그의 누이는 음악으로 가득 찬 집에서 자랐다. 공장 노동자인 아버지는 1950년대 후반 이탈리아 메두노(Meduno)에서 스웨덴으로 건너왔고, 그때 소년 소프라노 로베르티노 로레티(Robertino Loreti)의 LP 컬렉션을 가져왔다. 집 안에서는 늘 이 레코드가 재생됐다. 어머니는 슬픈 이야기로 가득한 ‘스웨덴 민요 발라드’를 노래했다.

“로베르티노는 제가 1살부터 8살 때까지 첫 노래 선생님이었어요.” 이는 유튜브에 올라온 클립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마테이는 5살 때 스웨덴 라디오 프로그램 출연해 이탈리아 노래 ‘Mamma’를 불렀고, 어린아이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선명함과 자신감을 보여주며 놀라게 했다. 라디오 진행자에게 그는 ‘아버지가 이탈리아 사람이에요. 단어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어쨌든 노래를 해요’라며 의젓하게 말한다.

지난해 메트 오페라에서 공연한 윌리엄 켄드리지 연출의 베르크 오페라 '보체크'

반세기가 지났지만, 마테이는 여전히 그의 직업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수로서의 정체성이 일찍 왔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죠. 변호사나 수학자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없었고, 이어가야 할 가업도 없었습니다. 나는 노래를 할 수 있었고, 그것은 선물이었어요. 18살이 되기 전까지 오페라를 듣지 않았지만, 오페라 가수가 되고 싶다는 것은 알았어요.”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셜리 바세이(Shirley Bassey), 엥겔베르트 훔퍼딩크(Engelbert Humperdinck)를 좋아했다. 1967년 팝 히트곡 ‘Please Release Me’는 그의 길티 플레저였다. ‘부모님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저를 지지해주셨어요.’ 이는 마테이의 교회 합창단 오르간 연주자와 스웨덴 최고의 음악학교에 입학하도록 그를 지도한 다른 사람들처럼, 그의 재능을 발견하도록 도왔다.

마테이는 스웨덴 최고의 음악학교, 스톡홀름의 왕립음악원(Royal Academy of Music)과 University College of Opera에 입학했다. 23살 때는 그의 커리어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성악 지도 교수 Solvig Grippe를 만났다. 국제적인 커리어가 시작했을 때에도 1년에 한 번 스웨덴으로 돌아가 Solvig Grippe로부터 노래를 배웠다. (그녀는 2011년에 별세했다.)

“운이 좋았어요. 그녀로부터 테크닉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그녀는 내가 항상 너무 크게 노래하고 있다고 말했어요. 작은 목소리로 부드럽게 부르길 원했죠. 그렇게 됐을 때 매끄러운 음색이 만들어졌고, 밀어붙이지 않게 노래 부를 수 있었죠.” Grippe는 그가 힘들이지 않고 매끄러운 음색을 내도록 도왔다. “그것은 오페라 소리도, 약한 소리도 아닌 저만의 소리였어요.”

그는 ‘Fach’라는 말은 피하지만 ‘아마도 서정적인 바리톤’이라고 인정한다. 가곡, 오페라, 크로스 오버 등 여러 노래를 부르려는 그의 개방성은 ‘젊은 소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 그의 목소리는 매혹적임과 아름다움으로 투영된다. 마테이는 무대 위에서 자연스러우며, 키가 크고 잘생긴 화려함과(<세비야의 이발사 속> 그의 피가로는 다재다능하고 마초적이다.) 가슴 터질 것 같은 비통함(<파르지팔> 속 암포르타스는 무대에서 엄청난 고통으로 힘겨워한다.)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러한 순간의 열기 속에서, 때때로 모든 것을 예상한 듯한 연기를 펼치곤 한다. 보체크는 버는 수익 모두를 마리에게 준다며 의사에게 열변을 토하고 격분한 알마비바 백작은 ‘Vedrò, mentr’io sospiro’ 아리아에서 자신의 발등을 찍을 피가로와 수잔나에 대한 복수를 계획한다.

왕립 음악원 첫해에 그는 스웨덴 TV에서 피아노 반주로 <돈 카를로> 중 포사의 아리아를 부른다. 이 공연 후 Ann Braathen이라는 젊은 매니저가 마테이에게 함께 일하길 바란다며 연락해왔다. “우리는 함께 사업을 배웠어요. 가수로서의 제 목표는 일을 잘 해내고 좋아하는 것이지, 이를 지나치게 많이 하는 것은 아니었거든요. 삶의 균형을 찾고 좋은 일상을 누리고 싶었어요.” 마테이는 25살이었던 1990년, 도르트닝홀름 궁전 극장(Drottningholm Court Theatre)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가짜 정원사, La finta giardiniera> 나르도(Nardo) 역으로 프로 데뷔했다.

University College of Opera에 다니던 1991년에는 (당시 그는 메조 소프라노 Kerstin Meyer의 지도를 받고 있었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을 기반으로 한 Daniel Börtz의 작품 <바코스의 여신도들, Backanterna>에서 펜테우스 역할로 스웨덴 왕립 오페라에 데뷔했다. 연출은 잉마르 베르만(Ingmar Bergman)이 맡았다. 마테이는 어렸을 때 베르만의 유명한 영화 버전의 마술피리(1975년 새해 첫날, 스웨덴 전역에서 TV로 초연된 이 작품은 스웨덴 인구의 3분의 1이 시청했다)를 본 기억이 어렴풋이 있었다.

경력 초기 마테이. 왼쪽은 1991년 스톡홀롬에서 방영한 Daniel Bortz의 '박코스의 여신도들' 속 펜테우스. 오른쪽은 1995년 스코티시 오페라 '돈 조반니' 속 그의 모습


“<바코스의 여신도들>에 출연했을 때, 베르만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했어요. 처음에는 제가 잉마르(Ingmar)가 아니라 잉바르(Ingvar)라고 불러 그가 짜증을 내기도 했죠. 어린 저에게는 무척 큰 기회였어요. 베르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장면마다 수행해야 할 세부 사항을 안내했습니다. 저는 그가 시키는 것에서 늘 하나씩 추가했어요. 베르만은 이를 마음에 들어했고, 공연에서 보여주도록 허락했습니다. Börtz의 오페라는 상당히 복잡했고, 내 역할 역시 무척 어려웠습니다. 스웨덴어로 되어 있어 모든 단어를 이해할 수 있었어요. 여자들을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척이나 많았습니다.”

마테이는 환락과 의식에 미쳐 펜테우스의 잔혹한 죽음을 초래한 14명의 마이나데스를 회상했다. 공연 후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제임스 헬메 서트클리프는 ‘피터 마테이는 남성적인 전투력을 뿜어내는 훌륭한 바리톤, 펜테우스를 창조했다’고 호평했다. 스웨덴 왕립 오페라는 이 프로덕션을 되살려 1993년 TV로 상영했다.

“<바코스의 여신도들> 이후 스웨덴에서 스타가 되었어요.” 그가 웃으며 말한다. 스웨덴 모든 언론들이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그는 가수이자 교사인 아내 Rose-Marie Wahlström을 돕기 위해 남았다. (둘은 20살, 17살 두 딸을 두고 있다) 이후 1994년 그는 릴레함메르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에서 공연했다. “<세비야의 이발사> 속 로지나와의 이중창을 불렀어요. 공연도 잘되었고 제게는 운이 좋은 날이도 했죠.” 이후 그는 1995년 스코틀랜드 오페라에서 존 콕스가 연출하고 니콜라스 맥게건이 지휘한 돈 조반니에 데뷔했고, 이는 유럽으로 이어졌다.

2007년 프랑크푸르트에서 빌리 버드 역


“1996년에 잘츠부르크에 초청돼 게오르그 솔티 경과 공연했어요. 저는 <피델리오> 페르난도 역을 맡아 셰릴 스투더(Cheryl Studer), 벤 헤프너(Ben Heppner), 르네 파페(René Pape)와 함께 했습니다. 제게 중요한 것은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하는 것이었어요. 큰 극장에서 작은 역할을 맡다보면 다른 공연들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죠. 나는 오디션이나 대회에서 잘하지 못했지만, 무대와 역할을 받으면 실력을 증명할 자신이 있었어요. 일을 할 때마다 늘 2~3개의 다음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마테이는 <라 보엠>의 마르첼로부터 <빌리 버드> 타이틀 롤까지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호평받았다. 예브게니 오네긴과 <피가로의 결혼> 알마비바 백작으로도 유명한데 메트 오페라와 ROH에서 각각 2002년과 2008년 데뷔했다. 대표적인 역할 돈 조반니로는 1995년 예테보리 오페라 극장에서 데뷔했다. 이후 스톡홀름의 스웨덴 왕립 오페라에서 공연한 그는 1999년 신시내티 오페라에서 미국 데뷔를 했다. 2006년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현대 연출로 파리 국립 오페라 가르니에 극장에서 공연했고 2011년에는 로버트 카슨 프로덕션의 라 스칼라 시즌 개막 공연으로 화제를 모았다. 메트에서 세 번의 <돈 조반니> 연출을 경험한 그는 지난 봄 이보 반 호브의 새 프로덕션(파리 국립 극장과 공동 제작)에서 총을 휘두르는 돈 조반니로 변신할 뻔했지만, 코로나19로 일정이 변경됐다.

2014 메트 오페라에서 '피가로의 결혼' 속 백작, 수잔나를 연기한 마를리스 페테레센과


수많은 돈 조반니를 연기한 마테이가 최고로 꼽는 경험은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다니엘 하딩이 지휘한 1998년, 1999년 엑상프로방스 페스티벌에 피터 브룩의 프로덕션이다. “3개월간 끝없는 리허설과 즉흥 연주를 반복했어요. 피터 브룩은 몇 시간 동안 서서 우리 젊은 가수들을 실험했습니다. 긴 각목을 던져 그 각목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폈죠.” 코멘다토레를 죽인 흉기가 되기도, 폴댄스에 활용되기도 한 각목은 이 연출 전체에 중요한 요소로 사용되었다. “브룩과의 작업에서 나는 끝없는 즉흥 연주를 할 에너지를 얻었어요. 학교에 다닐 때는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여겼는데 브룩에게는 무한한 에너지가 좋게 작용했습니다. 이 연출에서 보여준 저의 재능은 그들이 높이 평가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어요.”

이는 마테이가 돈 조반니를 다양하게 표현하는 기회로 이어졌다. 모차르트 작품 속 자유에 대한 그의 묘사는 세월이 흐르면서 변화해가고 있다. “예수와 악마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어요. 돈 조반니 역할과 함께 상황을 탐색하는 다양한 시도로 ‘양면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를 궁지에 몰아넣는다면, 그는 자유로워질 거예요. 완전한 아름다움과 어둠, 완전한 친절과 비열함 같은 정반대의 요소가 필요합니다. 제가 만약 20년 동안 계속 이 역할을 한다면, 80세 쯤에는 죽음이라는 요소도 넣을 수 있겠죠. 힘은 없겠지만, 생각과 그가 느끼는 좌절감은 동일할테니까요.”

21세기 소셜 미디어와 코로나 시대, 마테이는 Malin Byström과 함께 지난 6월,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돈 조반니>를 선보였다. 다니엘 하딩이 지휘하는 스웨덴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이 공연에서 마테이는 청중이 없는 그리움을 전했다.

2007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속 오네긴, 그레민 공작 역을 맡은 Ferruccio Furlanetto와


“9월에는 호넥, 예테보리 오케스트라와 함께 말러의 가곡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Lieder eines fahrenden Gesellen’를 불렀어요. 거대한 홀 안에 단 한 명도 없었죠. 몇 주 후 다른 콘서트에서 40명의 청중을 대상으로 공연했는데 큰 변화를 가져왔어요. 내 이야기를 전할 사람이 있다는 게 기뻤죠. 실시간 스트리밍의 단점은 한 음만 망쳐도 인터넷에서 영원할 거란 점이에요. 최고의 모습을 보여줄 때는 보통 카메라가 없더라고요.”

그럼에도 마테이는 두 개의 메트 HD 스트리밍을 좋아한다. 하나는 바틀릿 셔 연출의 2007년 <세비야의 이발사>이고, 다른 하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한 프란시스 지라드 연출의 2013년 <파르지팔>이다. 스웨덴에서 두 공연이 TV에서 상연될 때 그는 아내와 두 딸과 함께 시청했다.

‘낮과 밤’처럼 코미디와 비극을 넘나드는 경험에 그는 자신을 던지는 것을 즐긴다. (<파르지팔>에서 암포타스는 말그대로 티투렐의 무덤에 몸을 던졌다. 감동적인 동시에 무시무시한 순간이었다) “동전 앞뒤와 같아요. <세비야의 이발사>를 할 때는 몸 전체가 행복하지만, 암포르타스를 할 때는 비참해지는 것이죠.”

그의 DVD로는 엑상프로방스 공연의 <돈 조반니>와 파리 국립 오페라의 <피가로의 결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예브게니 오네긴> 등이 발매됐다. CD로는 리카르도 샤이가 지휘한 말러 교향곡 8번,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한 <피델리오>, 1994년 발매된 빌헬름 스텐함마르의 노래 앨범과 2019년 피아니스트 라스 데이비드 닐슨과 함께한 <겨울 나그네> 등의 솔로 앨범이 있다. 2000년에는 두 개의 그래미를 수상한 베를리오즈 오페라 <트로이 사람들>에서 Chorèb를 불렀다. 이는 콜린 데이비스가 지휘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했다.

메트에서의 바그너 롤. 탄호이저 울프람과 파르지팔 속 암포르타스


“저에게 새로운 음악이었어요. 프랑스 오페라를 좋아하지 않지만, 빨리 배울 수 있었고 바비칸에 들어가기 전 여러 번 리허설 했습니다. 리허설과 풀 스테이지 무대 공연 이후의 기억은 없어요.” 마테이의 Chorèbe를 정교하게 노래했다. 그는 데이비스와의 또 다른 콜라보레이션에 대한 기억이 있다.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 Deutsches Requiem> 공연은 역대 최고 중 하나였어요. 그의 지휘는 공격적인 동시에 매우 서정적이었어요.”

인터뷰의 화제가 또다시 유행병으로 옮겨가자 마테이는 11월에 예정했던 파리 오페라 극장의 <라 트라비아타>에서 제르몽 역할 데뷔를 할 수 없었다며 언급한다. 이 연출은 사이먼 스톤(Simon Stone)이 맡아 소셜 미디어적인 요소들을 활용했다. “여전히 제르몽을 연습하고 있어요. 완전 고전 연출이라면 할 일이 덜하겠지만, 현대적인 접근 방식이 있다면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힘 싸움을 더 보여줄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암포르타스와 <탄호이저> 울프람 역으로도 성공한 그이기에 마테이는 더 많은 바그너를 부를 수도 있겠다. 아마 우탄(Wotan)이 될 수 있을까? “우선 <라인의 황금>부터 보고 그 느낌이 어떤지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역할을 제대로 해야하고 그에 맞춰 목소리를 작업할 시간도 필요하죠. 단순히 음표만 배우는 게 아니라 노래하는 방법도 알아내야 해요. 옳지 않다고 느끼면 목소리가 말해줄 거예요. 또 역할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무대에 서봐야 합니다. 역설적이긴 한데요. 그게 될지 안 될지는 우선 해봐야 알 수 있어요.”

시그니처 롤 : 레포렐로로 분한 브린 터펠과 라 스카라 극장 돈 조반니


마테이의 미래에 분명 새로운 역할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두 개의 녹음도 계획돼 있다. 현재 그는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일) 50명의 관중을 위한 소규모 리사이틀도 계획하고 있다. (여행은 덜고 현지에서의 공연이 늘어날 듯) 체력을 유지하고 (숲을 돌아다닐 시간이 많아짐) 목소리도 훈련 중이다. (복싱 장갑을 선반 위에 올려놓기만 한다고 사람을 쓰러뜨릴 순 없을 것)

지난 10월에는 스웨덴 북부에서 엄격한 사회적 거리두기 하에서 성악도들을 위한 주말 마스터 클래스를 열었다. 9명의 사람들이 최소 2m 떨어져 앉고, 환기를 위해 창문도 열고, 글라스 스크린도 설치했다. 학생들은 스웨덴 노래나 스웨덴어로 번역된 이탈리아 노래를 불렀다. 다른 언어로 노래를 부르기 전에 모국어 노래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목소리의 단서를 찾는 게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무언가가 그 사람의 목소리를 막는 느낌이 든다면 도울 방법을 찾아야 하겠죠. 진정한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일이에요. 이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할 수 없을거라 여겼던 일을 해내게 하는 것이 제겐 가장 중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