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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국제음악제 푸라이부르크 오케스트라 마태수난곡 240405 본문

문화개미

통영국제음악제 푸라이부르크 오케스트라 마태수난곡 240405

willow77 2024. 4. 21. 18:21

 

푸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마태수난곡>을 보기 위해 통영에 다녀왔다. 푸라이부르크는 전체 10회의 투어 공연 중 웬일로 우리나라에서 서울 롯데콘, 통영, LG아트센터까지 3회나 열었는데 서울 공연의 경우 바로크라 그런지 다른 내한 공연들에 비해 나름 저렴한 25만 원부터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너무 비싸기도 하고 작년에 이맘때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Il Giardino Armonico)와 김강민(Kangmin Justin Kim) 공연을 보기 위해 갔던 통영이 너무 좋았어서 걍 통영으로 갔다. 교통비와 시간, 숙박비까지 만만치 않지만 맨 앞 R석 조기예매 7만 원이라 공연도 보고 관광도 함께하기 더없이 좋은 선택이었음. 

오라토리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수난곡을 제대로 본 건 작년에 윌리엄 크리스티(William Christie)와 레자르 플로리상(Les Arts Florissants)이 인천 아트센터에서 공연했던 <요한수난곡>이 처음이었다. 워낙 대곡이라 국내에서 자주 열리지도 않고 무대 연출이나 연기 없이 지속되는 경건한 분위기가 노잼일거라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끔 <메시아> 같은 종교적 색채가 강한 공연을 가면 객석도 뭔가 예배보는 것 같은 독특한 느낌이 드는 게 일반적인 클래식 공연 볼 때랑 분위기가 확실히 다름. 인천 가기 전에 예습한답시고 유명한 영상물 중 하나인 사이먼 래틀 & 베를린 필에서 나온 블루레이를 사서 봤는데 가장 중요한 복음사가 맡은 테너가 못하기도 했고 합창단이 무용하고 가수들이 연기하는 미니멀한 무대 연출이 뭔가 좀 정신 사나웠었다. 그런데 웬걸. 직접 가서 보니 오페라와는 차원이 전혀 다른 감동을 얻을 수 있었다. 역시 바로크 음악은 바로크 악단이 연주해야 하고 수난곡에 무대 연출 담으면 안 됨.

공연이 시작하고 연주자들이 들어오는데 얼마 뒤 자리를 잘못 잡았다는 것을 느꼈다. 하프시코드를 겸한 지휘자 오른편에 비올라 다 감바, 그 양옆으로 현악기, 그 옆, 뒤로 목관 악기가 자리했고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좌우로 나뉘었다. 나는 맨 앞 중앙에서 살짝 오른쪽에 앉았는데 당연히 솔리스트들이 오케스트라 앞에 설 것이라 생각했건만 예수만 오른쪽에 고정이고 복음사가를 제외한 모든 솔리스트들이 맨 뒤에 있다가 본인 파트 때만 앞에 걸어 나와 지휘자 앞, 오케 뒤에서 연주했다. 이 때문에 지휘자가 서기만 하면 얼굴이 가려져 거의 안 보였음 흑흑. 노래하는 모습을 제대로 못 봐 너무너무 아쉬웠다. 

첫 곡이 시작되자마자 음반이나 현장 실황에서 느낄 수 없는 전혀 다른 감동을 접할 수 있었는데 2개의 합창단과 2개의 오케스트라가 각각 분리되어 연주하는 이중구조가 바로 느껴졌다. 지휘자인 프란체스코 코르티(Francesco Corti)의 디렉션에 맞춰 함께 연주하면서도 장면에 따라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상호작용하는 모습, 성부가 쌓이면서 점점 커지고 다변화되는 소리, 이에 따라 달라지는 입체적인 울림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예수가 등장할 때마다 후광처럼 깔리는 현의 반주도 생생했고 솔로곡에 붙는 목관악기의 오블리가토도 최고였음. 여러 오블리가토 중에서 개인적으로는 비올라 다 감바가 제일 기억에 남았는데 맨 앞에 자리한 덕분인지 합주할 때도 그 소리가 죽지 않았다. 비올라 다 감바는 첼로랑 비슷하게 생겼음에도 현이 2줄 더 많고 연주자 멕이려고 활을 저렇게 잡게 한 건가 싶을 만큼 연주하는 모습도 불편해 보이는데 다른 연주자들과 달리 허리 받침도 없는 딱딱한 의자에서 다리로 악기를 붙잡고 긴 시간 또렷한 소리를 내는 모습이 진짜 장인의 경지였음. 연주자인 미메 야마하로 브링크만(Mime Yamahiro-Brinkmann)은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가 아니라 스웨덴의 드로트닝홀름 바로크 앙상블 소속인데 작년부터 이곳의 음악감독을 맡았던 지휘자가 객원으로 데려온 게 아닌가 싶다.
 
 

Andreas Wolf - Mache dich, mein Herze, rein

 
 
솔리스트 중에는 베이스 안드레아스 볼프(Andreas Wolf)가 제일 좋았다. 레포렐로로 봤을 때는 그냥 그랬는데 성량도 음색도 너무 감미로웠고 바이올린에 맞춰 부르는 42번 아리아 ‘나의 예수를 돌려주오(Gebt mir meinen Jesum wieder )’, 65번 아리아 ‘마음이여 깨끗이 만들지어다(Mache dich, mein Herze, rein)’가 정말 쩔었다. 필립 자루스키(Philippe Jaroussky)는 작년에 성남에 왔을 때보다 나이가 더 든 느낌인데 몰입하는 모습은 좋았지만 다른 가수들에 비해 쵸큼 아쉬웠고 카테리나 카스페르(Kateryna Kasper)는 뭔가 소싯적 도로테아 뢰슈만(dorothea röschmann)과 비슷한 게 음색도 연기도 좋았음. 고음악 외에도 레퍼토리를 확장할 수 있지 않을까. 제일 아쉬운 건 복음사가였는데 합창단 틈에 끼어서 노래를 불러 그런지 다른 가수들에 비해 또랑또랑하게 들리지 않았고 작년에 레자르 플로리상이랑 왔던 복음사가가 워낙 넘사였어서 기대한 것에 미치지 못했던 것 같다. 합창도 살짝 아쉬웠다. 이 공연 보러 가기 몇 주 전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에서 한 <요한수난곡>을 보러 갔었는데 정말 국뽕이 아니라 이때 합창이 더 잘했음 ㅋㅋㅋ… 다 같이 연주할 때도 성량이나 합에서 차이가 났지만 무엇보다 제사장이나 하녀같은 단역들을 합창단 솔로가 연주할 때 차이가 확 느껴졌다. 이번 공연에서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 단원들도 몇몇 함께했다고 하는데 통영이라 일부만 참여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악 연주에 비해 살짝 아쉬웠음.

공연 외적으로 제일 짜증 났던 건 공연장에 자막이 따로 안 나온 점 ㅠㅠ. 자막을 못 읽어서 문제가 아님. 통영국제음악당이 콘서트홀에 이 시설을 아예 고려하지 않은 듯한데 자막이 없어 종이에 인쇄한 가사집을 따로 제공했다. 근데 관객들 다 극의 진행 상황에 맞춰 가사집을 넘기는 바람에 토익시험 때 정답 나오면 다함께 수그리는 것 마냥 촤르륵 촤르륵 소리가 나서 열라 스트레스 받았다. 진짜 합창 피아니시모 때 그걸 꼭 넘기셔야 하나요. 촤르륵 촤르륵 개스트레스 ㅠㅠ 내용 다 알고 온 입장에선 사실 가사집 필요도 없고 관객들도 음악과 연주를 봐야하는데 사람들 다 가사집에 몰입해서 무대는 안 보고… 근데 자막이 없는 걸 어떡해. 시설을 따로 만들던가 조치를 취해야할 것 같다. 그리고 1부는 끝나고 난 뒤 지휘자 동작에 맞춰 박수가 나왔는데 2부는 역시 안다 박수가 나왔어요…^ ^ 한국인들 역시 성격 급하다고 생각했을까 봐 걱정했는데 서울에서는 안 그랬다고 하니 다행이다.
 
 



작년에 처음으로 통영국제음악제에 갔었는데 매년 기획도 프로그램도 세심하게 구성한 것을 왕왕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페스티벌 날짜도 어쩜 저렇게 찰떡으로 잡는지, 작년에는 벚꽃은 없었지만 꽃이 막 피기 시작해 너무 예쁘고 날씨도 좋았는데 올해는 벚꽃까지 만개해 그냥 관광하러 오기도 참 좋았다. 다른 곳에 비해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서 그런지 식당이나 가게도 다들 친절하고 맛있음. 내년에도 좋은 프로그램으로 방문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