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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쓰는 2023년 최악의 공연 후기, 서울시오페라단 갈라쇼 231209 본문

문화개미

늦게 쓰는 2023년 최악의 공연 후기, 서울시오페라단 갈라쇼 231209

willow77 2023. 12. 22. 00:31



올해 참 좋은 공연을 많이 봤는데… 몇 주 전 본 서울시오페라단 갈라쇼가 올해를 최악의 공연으로 마무리할 뻔 하게 해주었다. 다행히 이 공연 다음에 한화 클래식으로 덮을 수 있었음 ㅋㅋㅋㅋ 보자마자 분노의 후기를 기록하려고 했는데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까 싶어 기다렸다. 그러나 역시 대중성 미비한 오페라 업계에서 무슨 일이 생기건 딱히 관심 없고요 ^ ^ 기사도 한줄 안 나왔고요 ^ ^

사실 이 공연을 꼭 보고싶어 예매한 건 아니었는데, 연초에 <마술피리>, <투란도트>, 이 갈라쇼를 묶어 패키지로 18만 원에 판매했다. 그리고 먼저 공개된 <마술피리> 캐스팅 명단에 테너 김건우, 바리톤 김기훈이 있어 웬 떡이냐 싶어 패키지 티켓을 구매함. 김건우, 김기훈을 6만 원에, 그것도 <마술피리>로 보다니 완전 혜자! 그 후에 <투란도트> 이용훈까지. 연출이나 노래 외적인 요소는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티켓 값에 비해 정말 좋은 공연 봤다고 생각했는데… 이 갈라쇼 때문에 앞으로 서울시오페라단 패키지 티켓은 구매하지 않을 것 같다.

처음 프로그램이 공개됐을 때부터 살짝 쎄했다. 테마도 없고 흐름도 없이 프로그램이 그냥 막 나열됐는데 가령 <라보엠> 미미 아리아 다음에 갑분 <세비야의 이발사> 피가로 아리아가 나오는가 하면, <삼손과 데릴라> 메조 아리아 다음 <사랑의 묘약> 속 둘카마라 약 파는 아리아가 나오는 식이였다. 그냥 프로그램 목록만 봐도 기획을 그리 심도있게 했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들음. 연말에 맞는 테마를 정하든가, 아니면 몇 작품 안에서 노래를 추려서 했으면 훨씬 좋았을 것 같은데 그냥 참여자들이 부르고 싶은 노래 순서대로 부르는 느낌이랄까. 거기다 사회에 웬 정준호랑 신현준????? 뭥미 싶었는데 찾아보니 작년에도 서울시오페라단 갈라쇼 사회를 신동엽이 봤단다. 그리고 진행의 신답게 물 흐르듯 너무 잘 했다고 들어 뮤지컬에 비해 인기가 한 줌인 오페라 저변을 넓혀 보겠다는 서울시오페라단의 큰 그림인갑다 생각함.

그렇게 공연이 시작 됐는데 우려했던 부분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것을 넘어 상상 그이상을 보여줬다. 첫 곡 <박쥐> 서곡 이후에 두 사람이 등장했는데, 시작부터 방송에서 보여주던 티격태격거리는 모습을 무대 위로 가져와 연출한 것은 일단 넘어가자. 정준호는 첫 곡부터 이 노래가 <박쥐> 서곡인지 <아이다> 개선행진곡인지 몰라 헤맸다. 대본을 방금 봤나 싶을 정도로 계속 버벅거렸는데 버벅거리면서 진행하는 건 그래도 이해할 수 있는데 둘이 실없는 농담을 끝도 없이 주고 받았다. 이 갈라쇼 연출의 특성상 이 같은 진행 방식은 공연을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지게 했는데, 가수가 나와 노래를 하고 퇴장하는 게 아니라 무대 양 옆에 놓인 쇼파에 앉아 사회자들과 애프터 토크를 하고난 뒤 함께 다음 사람의 공연을 관람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회자의 역할이 정말 정말 중요했다. 그런데 가수가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가수와 함께 작품과 노래 이야기를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결국 ‘오페라 가수들은 부부싸움을 어떻게 하냐’는 둥, ‘사모님의 이름은 뭐냐’는 둥 전혀 궁금하지도 않고 무례하기까지 한 질문들이 나와버렸다.

게다가 동선을 잘못 정한건지, 리허설을 안 한건지 소프라노 혼자 반대편 쇼파에 외롭게 앉아있고, 한쪽에서만 다른 사람들과 토크를 하는 어정쩡한 상황도 벌어졌다. 이럴거면 퇴장하는 게 백번 낫지. 무대 위 가수들은 물론 관객들까지 어색하고 민망해 도망가버리고 싶은 시간이 이어졌다. 거듭되는 실수와 같지도 않는 말장난이 계속돼 1부가 예정된 시간보다 한참 늘어졌고 시간이 딸린 2부에는 진행도 더욱 중구난방에 계획한 노래를 미처 다 부르지도 못했다. 그리고 정준호는 또 한번 노래가 끝나고 곡명을 잘못 말해 관객들이 정정해 주었고 합창단이 부르는 <나부코> 속 노래를 출연자들이 함께 부른다고 착각해 가수들을 중앙에 모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순서가 바뀌었으니 당연히 연주도 안 나오고 가수들도 개뻘쭘… 보다 못한 사무엘 윤이 마이크를 뺏어서 노래를 소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진짜 ㅋㅋㅋㅋㅋㅋ 말이 안나오는 광경의 연속. 대중문화가 오페라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고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젊은 성악가들이 크로스오버나 트로트로 전향하는 이유를 더없이 알 수 있었던 공연이었다. 정준호와 신현준이 오페라에 관심없는 것을 욕하는게 아니다. 라이브로 진행되는 공연에서 당연히 실수할 수 있다. 근데 존나 개빡치는 건 실수하고 나서의 태도다. 이미 1부 부터 배터지게 욕먹을 짓을 하고서도 끝없이 반복되는 실없는 농담과 무례한 태도… 내가 사무엘 윤 팬이라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내년에 서울시오페라단에서 하는 <토스카>에 나올 수 있다는 사무엘 윤 말에 아직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았으면 입조심하라는 말을 듣고 내 귀를 의심했다. 사무엘 윤 노래 부르기 전에 이 사람은 맨날 지각을 한다는 둥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데 이게 대본인지 설정인지, 설정이면 무슨 설정인 건지 셋이 친해서 하는 농담인건지 아무 설명도 없이 드립만 치니까 대체 뭔 상황인가 싶었다. 더 열받는 건 이날 사무엘 윤이 최고의 무대를 보여줬다는 점이다… 둘카마라 약팔이 아리아를 불렀는데 노래와 카리스마는 말할 것도 없고 관객석에 내려와 마이쮸도 뿌림. 맨 앞에 앉았는데 나만 스킵하고 지나가셔서 마상ㅠㅠ 사무엘 윤은 2부 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세비야의 이발사> 돈 바질리오 아리아가 예정돼 있었는데 거지같은 진행 땜에 시간이 지체되서 못 듣게 됐다.

돈을 받고 일하러 온 사람이 얼마나 그 일을 하찮게 봤으면 저렇게 할까? 대본은 읽고 온 건가? 저 따위 진행으로 얼마 받았을까? 이 정도로 관심없고 스스로에게 어려운 일이었다면 맡지 말았어야지. 서울시오페라단은 두 사람의 이런 역량을 알지도 못한 채 무대에 세운건가? 장일범, 조윤범, 일구쌤, 안인모 등등 오페라를 사랑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이 참 많은데 대체 왜 사회자를 두 사람으로 골랐을까? 이런 수준의 공연을 12만 원에 판매한건가?

진행에 가려졌지만, 공연 자체에 문제가 많았다. 사무엘 윤, 이혜정, 양송미 등등 노래 잘하는 가수들이 많았지만, 몇몇은 귀를 의심할 만큼, 이게 프로의 노래인가 싶을 정도로 정말 못했다. 공짜 공연도 아니고 표 값 받아 연 공연에 이런 실력의 가수를 세울 수는 없다. 다른 가수들이 저 노래를 듣고 무슨 생각을 했을지 참… 차라리 전공생들이랑 함께해서 명분이라도 챙기던가… 가면 쓰고 나와 노래 부르면서 벗는 것도 너무 별로였다. 복면가왕도 아니고; 그와중에 표가 안 팔렸는지 초대를 무척이나 많이 뿌렸는데 유료관객으로서 이것도 개빡침. 제돈 주고 산건 아니지만, 어쨌든 6만 원은 주고 본건데, 이건 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티켓 산 내가 등신이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무료관객들도 열받을 만큼 최악의 공연이었음. 이런 처참한 기획력으로 무슨 무대를 만든다는 건지… 인기 없는 업계라 천만다행이지 뮤지컬 공연에서 벌어졌으면 뉴스에 나왔을 법한 일이다. 다른 지역도 아니고 서울이란 타이틀을 가진 단체의 공연 수준이 정말 이 정도란 말인가... 그나마 있던 유료관객도 정 떨어지게 만드는데 오페라의 발전과 저변 확대를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