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서 하는 블로그

인터뷰 후기+짤털 본문

팬질/그밖에

인터뷰 후기+짤털

willow77 2021. 7. 4. 21:49

지난 4월, 마테이가 영국 오페라 매거진에서 커버 모델로 등장했다. 이 매체에서는 첫 커버. 사진은 마테이네 소속사에서 마음껏 쓰라고 올려둔 <겨울 나그네> 앨범 자켓에다가 내용도 알고 있던 게 많아 크게 특별할 건 없었지만, 그래도 코로나19 이후 근황도 알고, 몰랐던 옛 경력도 알게 돼서 흥미로웠다. 인터뷰를 길게 정식으로 한 것 같진 않고, 기존에 나온 기사들을 정리하고 전화로 멘트만 추가로 더 딴 것 같은 느낌.

마테이한테 안긴 야닉 네제 세겡. 오른쪽 사진을 보면 왜 저렇게 품에 쏙 안길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마테이가 작년 1월 메트에서 보체크할 때 아픈 건 알고 있었다. 기사로 나왔었음. 근데 그게 코로나 증상에 버금갈 만큼 정신 못 차릴 정도로 아팠다는 건 새로운 사실이었다. 아직 유럽이나 북미에 코로나 퍼질 때도 아니었는데 스웨덴 밖으로는 자주 나다니지도 않는 사람이 어쩌다 그런 심한 감기에 걸렸는지도 모르겠고, 그 몸으로 캔슬 안하고 무대에 기어올라간 것은 더더욱 이해가 안간다. 이번 시즌에 스페인에서 윌리엄 켄드리지 연출의 보체크를 또 하기로 한걸 보면 역할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생각하나보다.

베르만한테 직접 연기지도 받고 있는 마테이. 인생 최소 몸무게 아닐까. 딱붙는 옷을 입으니 대벌레 같기도 하다.


마테이는 유난히 했던 역할만 계속 맡거나 아니면, 듣도 보도 못한 요상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중 하나가 쌩신인 때 했던 <박코스의 여신도들> 속 펜테우스 역할이었다. <박코스의 여신도들>은 그리스 3대 비극 작가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으로 기원전 406년경에 공연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내용을 바탕으로 스웨덴 음악가 다니엘 보츠(Daniel Börtz)가 현대 오페라를 만들었다. 내용은 디오니소스에 미친 여신도들 때문에 빡친 펜테우스가 디오니소스를 종교로 여기는 사람들을 잡아들이고 박해하지만, 디오니소스에 의해 정신이 온전하지 못했던 어머니를 비롯한 여신도들은 펜테우스를 짐승으로 착각해 사지를 찢어 죽여버린다. 유튜브에 클립이 올라와 있어 마테이 부분만 봤는데 베르크는 저리가라할 정도로 음악이 난해하다. 당대 최고의 영화감독이었던 잉마르 베르만(Ingmar Berman)이 연출하고, 그게 스웨덴 전역에 방영됐다 하니 그의 말대로 당시 꼬꼬마였던 마테이한테 엄청난 기회가 아니었나 싶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중요한 프로젝트를 국제 데뷔도 하지 않은 한낱 학생에게 줬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페묵에서 퍼온 젊었을 때 모습&amp;nbsp;


이외에도 1993년에 영국 음악가 이안 맥퀸이 만든 <Fortunato>라는 현대 오페라에도 출연했음. 스웨덴 노를란드 오페라에서 의뢰해 만든 작품이라는데 당시에 21회 공연 죄다 매진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단다. 내용은 부모를 떠나 바이킹에 들어가려는 청년의 성장일기... 같은 거라는데 검색해도 잘 안 나와서 맞는지는 모르겠다. 마테이는 여기에도 출연해서 이런 명짤을 남기심.


다른 친구들이 콩쿨 나가 포폴쌓는 동안 졸업하기 전부터 현대 오페라로 먼저 경력을 쌓은 셈이다. 그것도 자국어로 된 오페라로. 스웨덴에서 대놓고 밀어준 것 같은 인상이 강한데, 어쨌든 본인도 대회나 오디션에서는 실력 발휘를 제대로 못했다고 하니, 국제무대로 나갈 다른 방법을 성공적으로 찾아낸 듯하다. 그가 새로 역할을 맡을 때, 단어 하나하나마다 무슨 의미인지 확인하고 마스터 클래스 때도 리브레토를 자국어로 먼저 해석해 불러보길 권하는 것도 그의 학생 때 공부법을 그대로 이어간 듯한 모습이다.



경력 초창기 때 돈조반니, 코지판투테 굴리엘모, 피가로의 결혼 피가로


국제무대로 나간 후에도 대체 왜 스웨덴 안에 있는 조그마한 기획사에서 안 떠나는지 의문이었는데 것도 해결됐다. 그 회사 창립일이 마테이 데리고 간 날이랑 비슷하다니 ㅋㅋㅋㅋ 그의 말대로 메이저 기획사나 음반사랑 괜히 노예 계약이라도 맺었으면, 극혐하는 월드투어 같은 것도 했을 거고, 들어오는 역할 족족 맡다가 목소리 말아먹었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음반도 스웨덴 내 오케들과 음반사들이랑만 내고. 뭐랄까,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자국의 작정한 보호를 받고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마테이도 그걸 아주 잘 알고 있는 것 같고. 지금은 아니지만, 2000년대 후반까지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룰레오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페스티벌도 열렸다. 어쨌든 데뷔 초에 함께했던 기획사와 여전히 같이 일하고 있고, 갔던 극장들만 가고, 했던 역할들만 하는 걸 보면 한번 연 맺은 사람들과 무척 잘 지내는 스타일인 것 같다. 동시에 변화를 싫어하는 것 같고.

비주얼 쩔던 피터 브룩 연출 돈쥐


사실 나와있는 영상물들이 많진 않아서 그가 그렇게 역할에 대한 고민을 진중하게 하고 있을 줄을 몰랐다. (돈 조반니를 80세까지 한다는 것을 상상했다는 것 자체가 좀 충격적... 보 스코부스가 했던 드미트리 체르니아코프 연출스러운 연기를 말하는 건가.) 돈 조반니 같은 경우에는 물론 잘하긴 하지만, ‘진짜 쩐다’라는 인상을 받은 연기는 마이클 하네케꺼 정도라... 것도 연출 자체를 마테이에게 쏟아부어 만든 거라 시너지 효과가 강했지, 솔직히 그가 명불허전 최고의 돈 조반니라는 점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돈 조반니로는 너무 약하다는 그 목소리로 그는 다양한 노래를 불렀고, 오히려 그런 점에서 다른 바리톤들과의 차별화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인터뷰에서도 강조했듯 나 역시 마테이의 장점은 오페라뿐 아니라 크로스 오버나 가곡을 불러도 어디하나 거슬리지 않고 감미롭게 들리는 확장성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맨날 했던 것만 한다고 투덜됐는 데 그런 깊은 고민이 있었을 줄은 몰랐다. 메트에서 했던 <파르지팔> 초연 때 진짜 호평받았었는데 첫 역할을 얼마나 심도있게 연구하고 공부하는지 이번 인터뷰를 보고 알았다. 그렇기에 제르몽 백작이 더더욱 궁금해 미치겠다. 녹음이 두 개 예정돼 있다고 하니 그것도 뭘까 넘나 궁금. 한국에 오는 건 바라지도 않을테니 그의 바람처럼 자국에서 건강하게 롱런했음 좋겠다.

'팬질 > 그밖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악플 반박  (0) 2023.04.24
대혼돈 속 파리가로의 결혼  (0) 2022.02.02
피가로의 또혼  (0) 2021.06.17
존잘 사진 발견함  (0) 2021.03.22
리뉴얼된 오페라 베이스에서  (0) 2021.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