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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연기된 메트 돈 조반니 새 프로덕션

willow77 2021. 1. 11. 14:09

경영난에 허덕이는 오페라 극장들이 각출해 프로덕션을 함께 만들고, 사오고, 돌려쓰는 요즈음, 메트에서는 2019-2020 시즌에 2018-2019 시즌 파리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했던 <돈 조반니>를 가져와 극장 개봉하기로 했었더랬다. 매우 현명한 선택인 게 2011년에 새 프로덕션이라고 올린 게 겁나 진부하다고 욕을 바가지로 쳐먹어서... 하여간 메트 공연은 연출이 세련됐다, 현대연출이다, 신박하다 싶으면 죄다 유럽에서 가져오거나 합작한 것들;

이 공연을 무척 손꼽아 기다렸는데 그 이유는 1. 당연히 마테이 주연, 2. 야닉 네제 세갱 지휘, 제라드 핀리(레포렐로), 이사벨 레너드(엘비라) 주연의 호화 캐스팅, 3. 한국인 소프라노 박혜상의 메트 체를리나 데뷔였기 때문이다. 박혜상은 지난 시즌 체를리나 외에도 메트에서 <마술피리> 파미나, <헨젤과 그레텔> 그레텔 롤 데뷔를 앞두고 있었지만 메트가 코로나19로 2021년까지 문을 닫기로 결정하면서 공연이 언제 열릴지 모르는 상황. 커리어 정점을 찍을 시기에 코로나19 크리를 맞아서 한국인으로서 무척 통탄스러움. 이 공연 때문에 박혜상 리사이틀까지 예매해서 다녀왔다. 몬가 나중에는 보고 싶어도 못볼 거 같은 느낌이 들어서.
 

 
유튜브로 클립이랑 예고만 봤는데 미하엘 하네케 공연과 닮은 점이 꽤 많다. 하네케 연출은 큰 거대 기업을 배경으로 섹스와 권력에 초점을 맞춰 돈 조반니를 피라미드 맨 꼭대기에서 권력을 쥔 사람으로 설정했다. 이를 여자 꼬시는데 아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데 상황에 따라 레치타티보를 생략하기도 하고, 개그 요소도 거의 다 뺀 채로 진행했다. 돈 조반니를 두려워하는 하층 계급 사람들의 모습, 그를 둘러싼 여자들 간의 상황이 2017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미투 열풍의 배경과 무척 비슷하게 느껴졌다.
 

 
 

 
 

벨기에 연극 감독인 이보 반 호브(Ivo van Hove)가 연출한 이 작품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된다. 다소 단조로워 보이는 석조 주택을 배경으로 했는데 장면에 맞춰 조명과 무대를 바꾸며 진행된다. 검은 양복과 넥타이를 입은 돈 조반니는 마치 마피아 또는 정치인, CEO, 월가 사람처럼 보인다. 시종일관 총을 들고 다니는 그는 사람을 죽일 때도 쫓길 때도, 극 초반 돈나 안나가 자신의 얼굴을 볼 때도 늘 당당하다. 1막 파티장면에서는 웬일인지 고전 의상도 보인다.
 

 
 

 
 

파리에서 처음 올렸을 때, 공들인 연출에 비해 출연진이 유명하지 않아서 그랬는지 크게 흥하진 않았다. 에티엔 드퓌 Etienne Dupuis랑 니콜 카 Nicole Car는 서로 부부인데 극 중에서 돈 지오반니랑 엘비라로 출연했다. 타이틀롤 맡은 드퓌는 긴장했는지 체를리나랑 부르는 사골곡 이중창에서 가사를 틀리질 않나, 소리도 잘 안나오고 이래저래 별로 못했었다... 레알 체를리나 이중창에서 가사 틀리는 거 첨봄. 것도 첫줄에서 바로 ㅋㅋㅋㅋ.... 그냥 묻기 아쉬운 연출이라 메트에서 가져왔나 본데 현대 연출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마테이에게 꼭 맞는 비주얼이 되지 않을까 싶다.
 

 
 

 
 


2019-2020 시즌 앞두고 메트에서 찍은 컨셉샷. 엘비라 역 이사벨 레오나르도랑.
아 마테이 더 늙기 전에 돈 지오반니 더 해야하는데 언제쯤 열릴 수 있으려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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