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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서 하는 블로그
미하엘 하네케가 연출한 돈 조반니, 2012 본문
피아니스트, 하얀 리본, 아무르로 세 차례나 칸 영화제 최고상을 수상한 오스트리아 영화감독 미하엘 하네케가 연출한 돈 지오반니. 현대사회 병폐와 사회적 쟁점을 적나라하게 비판하는 그 답게 본 프로덕션도 현실 속 부조리가 곳곳에 드러난다. 2005년 처음 공연된 이 프로덕션은 2010년대 초반까지 계속 공연해 온 것 같다. 유튜브에 올라온 도촬영상으로 본 후기를 남겨본다.
주 무대는 고층빌딩 복도? 같은 곳. 무대 중앙에 커다란 유리창 너머 맞은편 빌딩을 보니 꽤나 높은 곳인 것 같다. 막이 바뀌면 보통 장소나 주요 소품이 달라지는 것과 달리 이건 2막 내내 장소가 그대로다.

멀끔한 양복 차림으로 그냥 완전 샐러리맨같이 생긴 레포렐로의 한탄 후 등장하는 돈 조반니. 딱 봐도 회사 대표나 임원급쯤 되는 것 같다. 돈 조반니 첫 등장은 보통 도망치면서 나타나는데 얘는 뭐가 그리 여유로운지 자켓을 팔에 걸고 바지를 치켜올리며 걸어온다. 연이어 따라오는 돈나 안나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인지 사랑싸움인지 모르겠는 이중창 후에 회장님 같으신 코멘다토레가 등장하고 돈 조반니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이 연출에서 모든 인물은 자본주의적인 계급사회를 상징하는 듯하다. 돈 조반니와 레포렐로, 옥타비오, 코멘다토레, 안나는 멀끔한 정장 차림으로, 엘비라는 이들보다는 덜 포멀하지만, 피라미드 윗 단계 사람 같다. 반면 시골 처녀, 총각이었던 체를리나와 마제토를 비롯한 합창단원들, 엑스트라는 웬 미키 마우스 가면(영상물이 나올 수 없는 게 이 때문인가)에 놀이공원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입을 것 같은 똑같은 유니폼을 맞춰 입고 나온다.
연출자의 메시지는 엑스트라의 구성을 봐도 노골적이게 드러난다. 체를리나와 마제토를 비롯해 대부분 유색인종, 노숙자, 비행 청소년, 빗자루를 든 청소부 등으로 이뤄져 있다. 돈 조반니의 음모로 열리는 1막 마지막 파티 장면의 경우 보통 주요인물을 제외하고는 그래도 다들 즐겁고 행복하게 파티를 즐기는데 이 연출에서는 억지로 열린 회식 자리처럼 사장님만 신났다. 다들 똥 씹은 얼굴과 세상 다 잃은 무기력한 모습, 무언가 사건이 벌어지지 않을까 불안하고 그늘진 얼굴로 파티장을 서성댈 뿐이다. 합창단도 목소리만 들릴뿐 무대에선 드러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여느 때처럼 웃으며 돈 조반니가 연 파티에 입성한 사람들. 그런데 돈 조반니는 이 여자, 저 여자 집적대다 ‘Viva la libertà’ (우리 함께 자유를 위해 축배하자!)를 외치면서 옆에 지나가던 여자 엑스트라의 옷을 벗긴다. 놀라 울고 있는 그녀에게 파티에 있던 다른 피지배계급 사람들이 다가가 옷을 입혀주고 위로한다. 곧이어 또 다른 여자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눕히더니 성희롱을 하는데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달려와 그를 뜯어말린다. 이 장면 보는데 진짜 딱 여자애들이나 여직원들 성추행하는 교수, 부장 등등 말리려고 남자 동기들이나 직원들이 술자리 때마다 옆에 앉아 술 비지 않게 따라주다 취하면 집까지 택시 태워 보내는 모습이 생각났음.
이후 체를리나에게 계속 찝쩍대던 그는 으슥한 곳으로 체를리나를 데리고 가고, 체를리나는 속옷 바람으로 뛰쳐나온다. 마침내 정체를 밝힌 3인방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를 몰아세운다. 보통 이때 돈 조반니는 뭐 총을 꺼내 도망간다던가, 건물 밖으로 뛰쳐나간다던가 하면서 탈출하는게 국룰인데 여기서는 갑자기 바지 지퍼를 내리고 셔츠를 다 벗더니 본인의 남성성을 과시하며 몰려있던 군중들 사이를 묵묵히 빠져나옴. 마테이가 키가 크고 등치가 커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키 작은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그렇게 나오니 다들 비켜주게 생겼더라. 그냥 그 위용을 보니 더 이상 저항하고 감당할 마음이 안 생기는 듯 보였다. 몸을 좀 더 만들고 나왔음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도 물론 있음... 만들다 만듯한 느낌.

2막에서는 기존 돈 조반니의 스토리를 따라가다가 또 한 번 변화를 주는데 타이틀롤 아리아 ‘Deh, vieni alla finestra’를 부를 때다. 원래는 엘비라의 시종을 꼬실라고 부르는 노래인데 앞에 레치타티보를 다 떼고 엘비라가 흘리고 간 옷을 부여잡고 무릎을 꿇은 채 그리 구슬플 수 없게 아리아를 부른다. 애초부터 돈 조반니는 누구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감정이 딱히 없는 인물이니 그가 보여주는 슬픈 감정은 바꿀 수 없는 현실, 쓰레기처럼 살아가는 본인에 대한 자괴감으로 느껴졌다.
그런 돈 조반니의 심리는 1막 샴페인 아리아를 부를때도 나타난다. 무대 중앙을 차지하고 있던 커다란 창문을 열고 뛰어내릴 것처럼 아래를 내려다보다가(이때 진짜 고층빌딩 창문을 연 것처럼 밑에서 차가 지나다니고 바람이 부는 소리가 들린다. 영화감독이 연출해서 그런건지 완전 실감남.) 뛰어내리길 포기하고 다시 들어와 샴페인 아리아를 시작한다. 그때 지켜보고 있던 레포렐로에게 칼을 쥐어주며 자기를 찌르라는 듯이 옷 단추를 풀고 레포렐로를 몰아세우는데 결국 자신을 찌르지 못하는 레포렐로에게 갑자기 기습키스...를 해준다. 아래 영상은 루카 피사로니랑 마테이랑 같이 공연했을 때인데(52초 부터) 키차이가 별로 안나서 그런지 되게 잘어울림. 다른 영상 클립도 있는데 그 때는 입에 안하고 이마에 해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테이도 쩌는데 태생이 레포렐로 같은 피사로니의 데꿀멍한 연기가 일품이다.
클라이막스인 2막 마지막에 코멘다토레는 피지배계급의 호위를 받으며 사무실 의자에 앉아 쇼핑백을 뒤집어쓰고 나온다. 쇼핑백 밖에 뭐라 뭐라 써 있는데 잘 안 보여서 모르겠다. 어쨌든 돈 조반니는 사과하라는 그의 요구를 거절하는데, 코멘다토레에 의해 죽음의 문턱에 들어가는 다른 연출과 달리 여기선 미련 질질 흘리고 있던, 그 누구보다 돈 조반니를 사랑하는 것 같았던 엘비라가 갑자기 나타나 그를 칼로 찌른다. 엄청 슬퍼하면서. 이후 미키마우스 가면을 쓴 피지배계급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피 흘리는 돈 조반니를 들어 올리고선 무대 배경인 유리창을 열고 아래로 떨어뜨린다. 그러자 공연 내내 어두웠던 바깥 풍경이 환히 밝아진다. 돈 조반니를 떨어뜨린 피지배계급은 쓰고 있던 미키마우스 가면을 벗고 주요 등장인물들과 한 자리에 나란히 앉는다. 마치 더 이상의 차별과 계급은 사라졌다는 듯이.

마지막 장면에서 엘비라가 돈 조반니를 죽일 때 정말 표정이 슬퍼 보였다. 사실 연출에 따라 엘비라 첫 등장 장면을 장난스럽게 그리기도 하고, 증오만 터뜨리며 나오기도 하는데 이 연출에서 엘비라는 대체 ‘무슨 사연이 있었길래 그러지?’ 싶을 만큼 첫 등장부터 정말 슬픔이 가득한 채 나타난다. 또 돈 조반니를 만났을 때 빡친 게 아니라 무슨 잃어버렸던 자식 찾은 거 마냥 겁나 슬퍼하며 감격에 겨워한다. 해외 리뷰를 찾아보닌 사실은 남편이 밖으로만 돌아서 힘들어하는 아내 설정이라는데 딱히 그런 면을 크게 느끼진 못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피지배계급의 유니폼을 입은 안나, 옥타비오와 달리 혼자서만 유니폼을 입지 않은 채 등장한다. 돈 조반니를 직접 자기 손으로 죽이면서 미련을 던져버리고 싶었겠지만 그를 죽이는 엘비라의 표정을 보니 그 이후에 평온한 삶을 살진 않았을 것 같다.
회사라는 설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 그런지 다른 연출에서 소소하게 만나볼 수 있었던 체를리나와 마제토의 결혼까지 가는 험난한 이야기, 안나와 옥타비오 사이의 불신, 혹은 레포렐로의 욕망이나 엘비라의 처절한 사랑보다는 세상의 모든 권력을 지닌 돈 조반니와 이에 부딪히며 순응할 수 밖에 없는 돈 조반니가 아닌 사람들로 나누어서만 보게 된다. 마치 우리 사회처럼. 실제로도 마제토, 체를리나의 결혼식 장면, 코멘다토레의 장례식 장면은 아예 등장하지 않았다. 2막 클라이막스에서 돈 조반니의 음식을 몰래 훔쳐먹는 우스꽝스러운 레포렐로도 나오지 않고, 악마에게 끌려가거나 지옥불에 불타는 등 늘 판타지스럽게 끝나던 돈 조반니의 죽음도 빌딩 추락사(...)라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미투 의혹이 거세게 분게 2017년인데 그러기 10년도 더 전에 나온 이 연출은 위력에 의한 간음, 권력에 저항할 수 없는 피지배계급의 문제 등을 오페라 안에 오롯이 담아냈다. 나 역시 그런 피지배계급 중 한 사람이니 마지막에 돈 조반니가 모두가 힘을 모아 빌딩에서 추락시키는 모습이 더 감명 깊었다. 또 악인이 마침내 죽고 마침내 피지배계급이 승리하는 이야기인데도 그 끝이 현실적면서도 이상적이라 그런지 마음 한편이 되게 씁쓸함.
15년 전 연출인데도 소오름 돋을 만큼 찰떡인 이유는 짜임새 있는 연출이기 때문도 있겠지만, 내가 본 공연이 피터 마테이 주연이라 더 그런 것 같다. 진짜 태생부터 사장님처럼 고위 임원직 역할이 어쩜 이리 잘 어울리던지. 도촬 영상이라 선명하지도 않고 노래는 더더욱 제대로 안 들렸지만, 그냥 화면 너머로 보이는 비주얼 자체가 너무 잘 어울렸다. 또 슬픔 가득한 엘비라도 정말 잘했음. 미키 마우스 가면 때문에 영상물 제작물이 어려운 건지 제대로 나온 클립 하나도 없지만, 진짜 이대로 묻히기 아까울 만큼 현재의 모습이 계속 이어진다. 인종갈등 벌어지고, 여전히 미투 터지고 있는 요즘 다시 한 번 공연해도 잘될거 같음..
미하엘 하네케는 2013년 마드리드 극장에서 <코지 판 투테>를 선보이기도 했다. 해당 영상물은 이미 진작 발행돼 꽤 유명한데 왜 이건 안나오는 걸까ㅠ 찾아보니 어윈 슈로트도 하고, 다른 바리톤들도 몇번 했던, 꽤 여러 번 돌린 연출인거 같은데 미키마우스 가면이 문제면 그거만 빼고 마테이 주연으로 다시 공연해서 영상물로 나와줬으면 좋겠다. 또 우리나라에서도 영화감독들이 오페라를 연출하는 모습을 보고싶다. 홍상수가 피가로의 결혼을, 봉준호가 돈 조반니를 박찬욱이 람메르무어 루치아 같은 거 선보이면 완전 꿀잼일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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