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테이의 극과 극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앨범 두 개
마테이가 1999년 액상 프로방스 페스티벌 때 부른 Deh, vieni alla finestra 유튜브 클립에 가장 많이 써있는 악플은 “테너세요?”랑 “이건 오페라 발성이 아니야”다. 팬이지만 반박불가인 게 그때는 진짜 지금 같은 묵직한 느낌도 없었고, 노래 흐름도 다듬어지지 않았던 때라... 게다가 그 공연은 노래뿐만 아니라 연기도 정신이 없고, 가사 실수까지 있어 개인적으로 돈 조반니로 명성을 날린 그의 흑역사라고 생각함. 리즈시절 비주얼이 가득 담겨 좋긴 한데 실력으로만 봤을땐 영상물이 왜 나왔는지 의아할 따름;;
실제로 바리톤은 테너보다 훨씬 목소리가 늦게 자리 잡히고 제대로 훈련하는 것도 40대 이후부터란다. 그 공연 이후 40대에 접어든 마테이는 메트 <세빌리아의 이발사>랑 잘츠부르크 <예브게니 오네긴> 타이틀 롤로 최고의 모습을 보여줌. 암튼 당시 불완전적임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동의한 점이 하나 있었으니 마테이의 ‘음색’이다. 악플에서도 ‘음색은 좋은데...’로 시작해서 까임. 목소리가 지나치게 감미롭고 아름다워서 돈 조반니로 안 어울린다는 평도 있었다.

이런 본인의 장점을 알고 있는 마테이는 2013년, 올드팝과 올드 뮤지컬 넘버를 담은 크로스오버 앨범(이라 쓰고 덕질이라 부른다.) <Once in my life>를 냈다. 그리고 14개의 커버에 미국의 국민가수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에 대한 존경심...과 팬심을 담았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곡이거나 그가 자주 부르던 재즈곡 위주로 음반을 구성한 것. 2013년 기준으로 마테이가 발매한 앨범이 꼴랑 네 개였는데 맨 처음 발매한 바리톤 아리아집, 두 번째는 마테이가 뜨니 계약했던 음반사에서 다른 앨범에 수록됐던 마테이의 곡만 모아 만든 짬뽕 앨범, 이후 크리스마스 캐롤 앨범, 네 번째가 이거였다. 데뷔 30년이 다 됐는데 앨범이 네 개뿐인 것도 이해가 안 가는데 그 중에 하나가 팝송 크로스오버라니.
마테이는 지난 2015년 스톡홀롬에서 열린 프랭크 시나트라 탄생 100주년 콘서트에도 참여할 만큼 그의 찐찐 팬이다. 인터뷰를 할 때도 시나트라의 말을 자주 인용하는데 저번에는 SNS를 하지 않는 것과 관련해 “프랭크 시나트라는 ‘청중에게 빚을 진 것은 좋은 무대뿐’이라고 얘기했어요. 사람들이 제가 소셜 미디어를 하지 않는 것도 용서할거라 생각해요.”라며 시나트라의 말을 인용했다. 유명하고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오페라 가수들도 많은데 타국의 다른 장르가수의 말을 굳이 인용하는 것 보면 얼마나 시나트라를 좋아하는 지 알 수 있다. 메트에서 <탄호이저> 공연을 앞두고 열린 간담회에서는 곧 시나트라 100주년 콘서트에 간다며 시나트라가 스웨덴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행복하게 웃으며 얘기하기도 했음.
본인의 취향과 애정과 덕심이 가득 담긴 앨범이기에 <Once in my life>는 마테이 팬들이라면 꼭 들어봐야 할 음반이다. 특히 기존 오페라에서와는 다른 마테이의 감미로운 음색을 느낄 수 있다. 한국에선 구하긴 힘든데 유튜브에 전곡이 다 올라와 있음.
많은 오페라 가수들이 다양한 레파토리 앨범을 발매하다가 꼭 한번 쯤 뮤지컬이나 팝송 크로스오버 앨범을 내곤 한다. 무슨 관문처럼. 인기 빨에 앨범 하나라도 더 팔아먹으려는 제작사 입김도 있을 것 같음. 그런데 사실 오페라 가수의 창법은 팝송은 물론 비슷한 장르로 여겨지는 뮤지컬과도 전혀 다르기 때문에 원곡보다 좋을 확률이 거의 없다.
베이스 바리톤으로 날고 기는 브린 터펠이 <레미제라블> 최고의 자베르, 아니 중박 정도만 하는 자베르도 될 수 없고, <마술피리> 베스트 밤의 여왕으로 꼽히는 디아나 담라우도 <오페라의 유령> 크리스틴으로는 어색한 것이다. 이건 노래를 잘하냐, 못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뮤지컬이나 팝이 오페라에서 노래를 하는 방식과 다르고 풀어가는 흐름 자체가 차이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가볍고 감미롭게 불러야 될 부분에서도 오페라 특유의 지나친 비브라토가 튀어나오면서 굉장히 부담스럽게 들리는 것이다. 또한 음반 안에서도 무대에서처럼 뻐렁치는 성량이 강조되는 탓에 음색을 집중해서 듣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뮤지컬 영화에서 훈련이 덜 된 배우들이 부르는 게 편안하게 들린다.


근데 마테이의 이 앨범은 그런 게 전혀 없다. 정말 팬심 빼고 봐도 오페라 가수들 크로스앨범 중에서 최고임. 곡 하나하나 모두 마테이의 미성을 오롯이 담아냈고, 오페라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마테이의 비음과 가성도 왕왕 들어있다. 전향해도 될만큼 너무나 담백하게 개잘부른다. 액상 프로방스 페스티벌에서는 거슬리던 이상한 꺾기랑 뽕삘도 여기서는 굉장히 자연스럽고 무척 감미로움. 평소 듣기 힘든 고음발사도 많이 나옴. 반주도 나쁘지 않다. 마테이의 목소리랑 딱 맞게 조화롭다. 특히 추천하는 넘버는 <For once in my life>랑 <What kind of fool am I>. <New york, New york>이랑 시나트라 최고 명곡 <My way>도 쩐다.
이 앨범의 유일한 단점은 앨범 커버사진이다. 진짜 어떤 놈이 머리 저렇게 해놓고 사진 찍자 그랬냐? 옷도 어제 입은 자기 옷 그대로 입고온 듯.... 앨범이 생각보다 안팔렸으면 디자인 때문이라고 본다. 팬인데도 사고싶지가 않은 비주얼이야ㅠㅠ 저게 뭐야 정말... 하...
노래를 들으면서 문득 마테이가 메트에 자주 가는 게 시나트라 때문인가 싶었다. 시나트라에 관한 언급은 많이 했는데 어떤 계기로 찐 팬이 되었는지는 아직 찾지 못해 그를 팬질하는 입장에서 무척 궁금하다. 시나트라 같은 마이너한 부분 외에도 이 음색 그대로 다른 뮤지컬 넘버랑 팝 앨범도 내줬으면 좋겠다.


<Once in my life>가 팝가수로서의 마테이의 장점을 담았다면, 6년 후 나온 <겨울 나그네, Winterreise>는 오페라 가수로서, 바리톤으로서, 34년의 그의 능력을 총집합 해둔 최고의 앨범이다. 작년 9월에 나온 이 앨범은 아마존 평점 4.9점(리뷰는 12개 밖에 없지만), 별 다섯 개를 기록하고 있으며 이 레퍼토리로 뛴 공연은 연일 매진 행렬을 이어갔었다.
<겨울 나그네>는 슈베르트의 대표적인 연가곡으로 24개 노래로 이뤄져있다. 연가곡이란 곡 하나하나가 이야기 전체를 구성하는 가곡을 말하는데 가난하고 고독한 삶을 살았던 슈베르트답게 노래 전체에 어둡고 우울한 기운이 가득하다. 줄거리도 사랑에 실패한 청년이 추운 겨울 연인의 집 앞에서 이별을 고한 뒤, 눈과 얼음으로만 뒤덮인 들판으로 방랑을 떠나는 내용이다. 들판을 해매며 청년은 고통, 절망을 느끼며 죽음에 대한 소회를 이야기하는데 슈베르트는 실제로 <겨울 나그네>를 쓴 다음해에 진짜로 죽었다. ㅠ

<겨울 나그네>는 오페라 가수들의 단골 레파토리다. 당장 생각나는 것은 베이스 연광철. 10년 전 쯤 무려 정명훈을 반주자로 쓰며 공연도 했었다. 바리톤 제라드 핀리, 토마스 크바스토프,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도 냈었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는 레전설 급의 앨범을 남겼다.
여느 바리톤들처럼 똑같은 레퍼토리 앨범을 냈구나 싶었는데 웬걸. 1번 안녕히(Gute Nacht) 듣자마자 귀가 열리고 눈이 뜨이는 느낌. 슈베르트 빙의한 것처럼 첫 곡에서부터 <겨울 나그네>의 전체적인 스토리가 그려지고 더운 여름에 듣는데도 불구하고 눈보라 휘몰아치는 벌판 한가운데 있는 것 마냥 쓸쓸하고 외로워진다. 마테이가 워낙 탁월한 독일어 딕션을 지녀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혼이 실린 것 같은 기분도 듦. 오페라와는 다른 가곡의 매력을 200프로 살려냈고, 그가 성악가로서 얼마나 뛰어난 지 알 수 있다.
반주는 스웨덴 피아니스트 라스 데이비드 닐슨(Lars David Nilsson)이 맡았다. 이 분은 앞서 봤던 <Once in my life>에서도 프로듀싱을 맡았던 마테이의 단짝이다. 올해 메트에서 했던 <앳 홈 갈라>에서 마테이의 Deh, vieni alla finestra 방구석 공연 때 아코디언 연주도 해줌.

작년 연말에는 스웨덴 공영방송국 SVT에서 마테이와 닐슨의 <겨울 나그네> 전곡 공연을 방송해주었다. 바닥에 닿을 듯한 길다란 롱코트가 마테이의 키와 무척 잘 어울림. 듣기만 할 때와 달리 표정과 연기도 보여서 드라마틱하게 느껴진다. 오프닝 때 둘이 다 쓰러져가는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면서 이야기하는데 스웨덴어 1도 몰라서 뭐라 그러는지는 모르겠다. ㅠ 친절하게도 SVT 미디어 플랫폼에서 아직까지 무료로 영상을 띄워두고 있음.
www.svtplay.se/video/21289511/peter-mattei-sjunger-winterrei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