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마테이의 <사람이 좋다>
2016년, 우리나라 KBS쯤 되는 스웨덴 공영방송국 SVT에서 2부에 걸쳐 마테이 다큐멘터리를 방송했었다. 입덕한 후부터 어떻게든 이 방송을 보려고 여기저기 뒤지고 다녔는데 못 구하다가 페북에 있는 마테이 팬 그룹에 어떤 분이 갖고 계셔서 페메로 부탁해 겨우겨우 구할 수 있었다. SNS도 일절 안 하는 그의 유일한 팬 그룹인 이곳은 내가 가장 어릴 것이라 생각될 만큼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대부분이고, 팬이 한 줌도 아닌 손톱만큼이라 그런지 다들 겁나 친절하시다 ㅋㅋㅋㅋㅋㅋㅋ. 질문하는 거 다 대답해주고, 자료 공유도 엄청 적극적임.
이해가 가는 게 워낙 아는 사람이 적다 보니까 한 명이라도 더 팬으로 만들고 싶고, 그렇게 유입된 팬이랑 갤주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신나더라고. 그룹장이 가입하는 사람들 생길 때마다 ‘누구누구가 새 식구가 되었습니다~’하고 공지 올리는데 웰컴 댓글 겁나 달림 ㅋㅋㅋㅋㅋㅋ. 아무튼 나도 그런 마음으로 어떤 팬이 예전에 마테이가 딸이랑 자기네 동네 교회에서 했던 크리스마스 온라인 콘서트를 찾길래 보내줬다. 한 일주일인가 유튜브 떴다 사라졌는데 잽싸게 받아둔 덕에 그 그룹에서 나만 파일을 갖고있는 모양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뭔가 우리나라 <사람이 좋다>랑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마테이네 부모님과 고향, 가족 이야기까지 담긴 알찬 다큐였음. 스웨덴어를 1도 모르니 마테이의 인터뷰 내용은 하나도 이해 못 했고, 다른 나라 언어 나올 때 스웨덴 자막이 달리길래 그거만 더듬더듬 구글에 번역 쳐 가면서 봤다. 그럼에도 중간중간 마테이 어렸을 때 사진도 나오고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학생 때 공연 영상이나 경력 초기 영상도 삽입돼 있어 이해는 못 해도 그냥 영상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다큐의 1부는 마테이네 아버지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의 아버지는 이탈리아 사람으로 스웨덴으로 이주한 후 그곳에서 결혼했다. 그건 알고 있었는데 아버지네 집이 생각보다 많이 못사는 집이라 좀 놀랐음. 메두노(Meduno)라는 이탈리아 작은 도시가 아버지의 고향인데 검색해보니 인구가 1,800명도 안 됨. 다큐 팀이 거기까지 찾아가 마테이네 친척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겁나 못 사는 동유럽 느낌이 많이 났다.



아버지는 이야기로만 등장하는 것으로 보니 지금은 돌아가셨나 보다. 아버지의 형제는 10명이나 되었는데 2차 대전으로 형제 중 두 명은 죽고, 전쟁이 끝난 후 일자리가 없어지자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고 한다. 여자 형제들은 밀라노나 베니스 같은 대도시에서 메이드로 일했고, 아버지 역시 일자리를 찾아 스웨덴으로 왔다고. 마테이네 고모가 인터뷰를 했는데 그의 아버지는 이탈리아 사람답게 평소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엄청 좋아했다고 한다. 마테이도 어렸을 때 집에는 늘 아버지가 갖고 있던 로베르티노 로레티(Robertino Loreti)의 LP 소리가 흘렀다고 이야기했었음.
다큐 중간에 식구들이 함께 모여 영상 메시지를 남기는데 고모, 삼촌, 조카를 비롯한 친척들은 여전히 이탈리아에 살고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마테이 7살 때 라디오 클립도 나옴. 난 처음 이 클립 봤을 때 소리가 너무 선명하게 들려서 가짜일거라 생각했는데 지난번 인터뷰도 그렇고, 이번에도 사실임을 확인시켜주었다. 애기 마테이는 이탈리아 국민송 <Mamma>를 부르는데 뜻도 모르고 이태리어도 모르지만 자기는 노래를 부른다며 겁나 야물딱지게 이야기함.


이후 마테이의 커리어에 대해 소개한다. 사진으로 봤던 20대 때 잉마르 베르만이랑 같이 연습하는 장면도 나오는데 자기 생각처럼 못 따라오는 마테이가 답답한지 베르만이 상당히 거칠게 다루고 마테이가 멍때리는 모습이 나옴 ㅋㅋㅋ 그 와중에 본인 이름까지 잉바르라고 잘못 부르니 열 받을만도 했음. 생각과 달랐던 또 한 가지는 마테이가 지금 부르는 대부분의 레퍼토리가 청년 시절부터 부르던 것들이라는 것. 특히나 말러 가곡은 자주 공연되지 않기에 나중에나 불렀다고 생각했는데 엄청 젊었을 때부터 부르는 모습이 나온다. 오네긴도 옛날부터 했음. 진짜 이 분은... 레퍼토리 숫자에 대해서는 1도 신경 안 쓰나보다. 소리 좋을 때 이곡, 저곡 다양하게 불러줬으면 좋겠는데 ㅠ.
마테이의 무대 밖 일상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인지 1부에서 마테이 인터뷰는 스웨덴 북부 도시 노를란드에 있는 그의 패밀리 별장에서 진행된다. 예전에 <세계테마기행> 보니까 땅은 오지게 넓고 사람은 쥐콩만큼 사는 덕분에 북유럽 사람들 대부분이 자산에 상관없이 섬머 하우스를 갖고 있다고 들었다. ‘우왕 별장, 부럽다~’ 이랬는데 거기 나오는 별장은 와이파이는커녕 가스도 전기도 안 들어와 촛불로 생활하고, 매트릭스 하나 놓인 창고에 가까웠다. 실종되어도 찾아내기 힘들 것 같은 산속 별장에서 쪼그만 배를 타고 별장 앞에 자리한 호수에서 하루종일 낚시하고, 들어와서 사우나 하는 게 그 사람들의 낙이었음.






마테이네 별장은 그에 비하면 거의 대궐 수준이었는데 꽤 오랜 시간을 보낸 것처럼 웬만한 살림이 집처럼 갖춰져 있었다. 별장 앞에 놓인 침대에서 딸들은 기타치고, 아내는 음식 준비하고, 반려견 요다는 돌아다니고, 마테이는 북유럽 사람들의 필수장기인지 모터보트를 타고 나가 낚시를 했다. 근데 편집이 겁나 웃긴 게 무대 위에서 풀메로 멋지게 노래 부르는 장면 바로 뒤에 폐인 꼬라지로 쭈글탱이처럼 별장 근처 돌아다니고 낚시하는 모습을 바로 붙여서 내보내 현격한 갭 차이를 느끼게 해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 그래도 스테이지 밖에서 옷 그지같이 입고 다니는데 여기서는 레알 <나는 자연인이다>에 버금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인터뷰하다가 고기 잡히는데 개 좋아함. 주머니 다 늘어난 검정 후드 진심 갖다 버리고 싶다ㅜ. 인터뷰 장소는 미국이랑 스웨덴이랑 왔다갔다 하는데 옷이 다 거기서 거기야... 비슷하다는게 아니라 똑같은 옷을 입고 나옴. 글고 다른 방송에서도 마찬가지고, 갖고 있는 옷 대부분이 검정색인 듯.


다큐 2편은 미국에서의 마테이 활약을 보여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테이는 미국 빠임. 음반도 몇 없으면서 남의 나라 국민송 커버 음반을 내질 않나, 스타워즈 광팬이라 개 이름도 ‘요다’로 짓고, 한 시즌에 한 번은 꼭 메트에 와서 공연함. 메트에서의 그에 대한 신뢰도 엄청난데 메트 총책임자인 피터 겔브가 인터뷰하길, 가수 본인이 스스로에게 가장 엄격하고 극한으로 몰아가며 연습하고,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못한다고 한다. 피터 겔브가 처음 마테이를 본 게 다시 나오지 않을 드림 캐스트로 했던 2007년 <세비야의 이발사>인데, 그때 너무 마음에 들었는지 돌아보면 새 프로덕션 프리미어나 브로드캐스트 일정에 꼭 한 번씩 마테이를 넣었다. 또한 그에게 <파르지팔>을 권유한 게 피터 겔브라고... ㅡㅡ... 그 제안을 받아들인 마테이는 2013년 메트 새 프로덕션 <파르지팔>에서 카우프만과 르네 파페랑 같이 나와 초짜임에도 수준급 노래와 연기를 보여줬고, 이후 한동안 이 극장, 저 극장에서 암포르타스만 주구장창 불렀었다. 지난번 인터뷰 보니까 여전히 바그너에 관심이 많던데 좀 듣기 쉬운 아버지네 국가 오페라 좀 해주시면 안 되나요.


다큐 중간에 메트에서 연습하는 마테이 모습이 나오는데 피터 겔브가 했던 얘기가 뭔지 알겠는 만큼 겁나 집요하게 보컬 코치(혹은 반주자)를 갈궈가며 연습한다. <파르지팔>을 연습하는 걸로 보였는데 안 풀리는 구간이 있자 계속 반복하고 코치가 어물쩍 넘어가려고 하니까 ‘행복하지 않다’며 다시 하자고 ㅋㅋㅋㅋㅋ. 그런 열정으로 작품 하나하나에 임해서 레퍼토리가 적은거라고 생각할게요...
다큐 후반은 가족들 이야기로 채워진다. 큰딸이 이제 20살이라 결혼을 상당히 늦게 한 줄 알았는데 학교 다닐 때부터 아내를 만나 결혼한 모양이더라. 그가 경력 초기부터 스웨덴에서 잘 나갔길래 집안이 잘 사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고, 무대 밖에선 정말 정말 평범해 보였다. 힘들게 구해서 본 보람이 있을 만큼 재밌게 봤다.
마테이의 메트에서의 새 소식을 이야기하자면, 2020년 코로나 때문에 엎어진 <돈 조반니> 새 프로덕션이 내년 5월 재개되고, 브로드캐스트 목록에도 올라갔다. 다만 지휘에 세갱, 레포렐로에 제라드 핀리, 엘비라에 이사벨 레너드, 체를리나에 박혜상이었던 기존 캐스팅이 전면 교체됐고, 여기서 탑급은 마테이 뿐임. 메트도 그걸 아는지 마테이 얼굴만 대빵만하게 걸어놨다. 흥미로운 건 잉 팡이 체를리나 역에 확정된 건데 메트 안에 있을 때는 브로드캐스트 때마다 쩌리 역만 맡다가, 나와서 유럽극장 돌더니 주역으로 발탁ㅎ... 둘의 케미를 또 한 번 기대해본다.


마테이는 올해 11월에도 메트에 설 예정이다. 실로 오랜만에 베르디 <돈 카를로> 로드리고를 부를 예정인데 원래 이것도 브로드캐스트 목록에 올라와 있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특별한 공지가 없어 팬 그룹에서 이런저런 말이 오갔는데, 그 전에 이 공연 엘리자베타 역을 안나 네트렙코가 부르기로 예정돼 있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네트렙코를 보이콧하면서 캐스팅도 교체됐는데 팬 그룹에 어떤 할미께서 이것 때문에 방송 목록에서 빠진 거 아니냐며 네트렙코 까는 글을 올리셨음. 분위기가 과열되자 그룹장이 겁나 긴 장문으로 ‘우리 행복하고 긍정적인 글로만 응원해요’라며 달래는 글이 또 올라왔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촉발된 클래식계의 혼돈이 이슈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나에게도 느껴지는 일화였다. 개인적인 의견으론 네트렙코 사태보단 최근 메트가 <돈 카를로> 프랑스 버전 공연을 새 프로덕션으로 방송했기 때문인 것 같은데...
모르겠다. 메트가 푸틴과 친목질하던 네트렙코를 오지게 빨아왔던 과거를 생각해보면 지금의 보이콧이 당연하긴 하지만 메트가 걍 쫌 웃기다. 음악감독이 미성년자 남자애기들 성폭력하는 거 알면서도 40년 넘게 자리보전해 준 메트가, 그거 옆에서 지켜봤던 피터 겔브가 인스타에 우크라이나 지지한다며 글 올리는 것도 정치적이자 가식적으로 느껴진다. 네트렙코를 조금 좋아했다면 모르겠는데 메트는 정말 개 좋아했었고 남편이랑 같이 공연도 엄청하게 하게 해주었음. 그때도 푸틴은 맨 나쁜놈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지네 공연영상 플랫폼에 ‘아프리칸 아메리칸 가수들’ 탭을 따로 만들어두질 않나, 연출에 대한 고민도 없고 합창단도 엉망이고. 마테이가 여기서 공연 안 했으면 좋겠는데 또 영상은 꼬박꼬박 만들어주니 싫어할 순 없고. 복잡한 심정이다. 마테이 다큐 얘기하다가 메트 까는 이야기로 마무리 됐네.